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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it out

관화/민화라고 부릅시다 -김용권지음-

by 북치고영 2023. 8. 15.

해당도서는 단종되어 원판매가보다 웃돈을 주고 중고거래하였다.

'민화'라고 하면 어떤 그림이라고 생각되는가.

내 기준에서 생각하자면

'민'나오니 백성'民'자를 떠오르고....

백성들의 그림이라고 하면 나조차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쉽게 그려지거나, 부담없는 그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설정한 개념이지, 사실이 아니며

이로 인해 우리의 겨레그림은 명확한 관점을 갖지 못한채 혼란을 겪었다.

 

기억할 수 있는 그림이 있다면- 호랑이 까치, 십장생, 오봉 산수화 정도.

 

이 책은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들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다.

 

관화는 무엇이고 민화는 무엇인지 굳이 구분하려는 이유와

'민화'로 명명된 계기, 그로 인해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모르고, 학자들은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우선 민화라고 이름 붙여 진 연유를 살펴보겠다.

 

1916년 우리나라를 한달여 여행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연대는 따로 안찾겠음)가

민화에 관심을 가지게되었고 1919년 3월 교토에서 열린 '일본 민예품 전람회'에서

일본의 토속회화 '오쓰에'를 '민화'라고 지칭하면서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1937년 2월, 월간 '공예'지에 기고한 글에서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유통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하자'고 주장했다.

일단, 우리나라의 민화는 민중 속에서 태어난 그림이 아니다.

 

1959년 월간지 '민예'에 발표한 논문 '불사의한 조선민화'라고 확실히 명시했다.

 

이 일본인은 우리의 겨레그림을 오직, 민중, 서민의 그림을 의미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해버린 것.

 

민화를 궁전화풍과 같은 권위적인 제도권 미술과 변별되는 비전문적인 '민중미술'로만 강조하고 평가하기에

오로지 '민중'만 남고 '왕'과 '사대부'의 전문적인 화풍은 블랙아웃 되버렸다.

안타깝게도 식민지의 국민들이 주체적일리 만무.

지배를 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존중이 있었을리 만무.

 

우리나라 민화 연구가들은 야나기 무네요시가 정의한 민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통에

상당기간동안 '관화'는 민화의 범주 속에서 다루어져 왔다.


일본의 길거리 화가가 여행자들에게 팔았던 싸구려 '오쓰에'등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된

우리의 궁중장식화, 불화, 그 외에 현재까지 자국민들에게 소개되지도 못한 채

소실된 작품들이 많을것이다.

 

크게는 종교용과 왕실용, 민간용을 구분하지 못하니

전시회에서조차 용어와 내용상의 괴리가 메꾸어 지지 않는 혼동이 종종 일었다고 한다.

 

도화서의 화원 그림과 순수한 서민의 그림이 구별하는 움직임이 진행 중에 있다.

 

지정학적 위치... 교두보적 역할. 반도의 접근성...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미 악랄한 의도에 의해 문화적 소실을 많이 겪었고

끊임없이 관심가지고 주체적인 주인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맞는 자리에 끼워 맞추지도 못한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내 몸의 어떤 장기도 타인에 의해 훼손되길 바라지 않듯이 

미처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역사와 문화가

외세에 의해 결정되어지고 영원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섬뜩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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