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재밌는 걸 읽고 싶어'라는 갈증에 시달리다 '미우라 시온'을 떠올리게 되었다.
막상 작가명을 기억하지 못해
'다다 심부름집'을 검색했다.
방구석에 누워 신나게 웃어젖히길 기대했으나
50페이지쯤 지나고 나니 나락으로 빨려드는 감정묘사에
스트레스가 밀려온다....아......
꽤나 사연 있는 소녀들의 이야기다..
소녀들의 길지 않은 역사에 일어난 사건들을
침참한 눈으로 제대로 마주 보고 언어로 모양을 만든다.
소녀들의 관찰은 섬세하고 직관도 뛰어나다.
당사자는 숨기려고 하지만 대체로 소녀들의 직관은 사실에 가깝다.
이런 류의 버디 무비(소설)가 인간관계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거라며 혀를 찬다.
그렇다.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
나의 청소년기는 괴물 같은 자존심이 버티고 서서
겸손하질 못해 공부도 시원치 않았고
멘토 비슷한 것도 알아볼 눈이 없었다.
깎아내리고 헐값에 후려쳐지고
굳은 얼굴로 방어하면 그것대로 미움받는 환경에서
일찌감치 도망갈 계획을 세웠다.
뭐가 되었든 나는 이 집에서 도망치리라.
개인적으로 어린 친구들과는 관계를 맺고싶지 않은데
배려를 당연히 요구하면서 무결한 듯 구는 태도를 못 견디겠다.
기분 좀 맞춰주면 당연한 권리인양
선배 취급같은건 하지도 않다가 지갑 혹은 우리 집 문이 열리길 기대하는 게
솔직히 귀엽지도 않을뿐더러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몇 살 어린 게 대수라고
받을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는 그 자의식이 꼴같잖다.
나이 차이 나는 인간관계에서는
꼰대로부터 자기를 지키려 드는 경우가 대중적 정서인 듯한데
반대로 호의를 권리로 아는 역행이 갈수록 눈에 띄는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겠지.
어른들이 어른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으면 하는 시절이 있었다.
어느 틈에 허술한 어른으로 자라
비난할 곳을 찾아 위만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쫓기듯이 어른다운 어른이 되려고 내 나이를 꼽아보고 있다.
예상치 못한 개그로 배 아프게 구르고 싶었지만...
빈약한 유년기가 떠오르는 바람에
입이 댓빨 튀어나온 미성숙한 어른이
'로맨틱한 버디무비는 사절!'이라며
데구루루 구르고 있네...쯧쯧
미우라 시온의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로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까지 보고는 밝고 해학이 넘치는 분위기의 작가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비밀의 화원'처럼 어두운 분위기 정도는 쌉가능이셨다..
역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님의 스펙트럼 앞에
주름잡았던 미간을 펴면서
더 더 더 읽어야 하겠노라 다짐해 본다.
'일기는 일기장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연장통-전중환 (0) | 2024.07.19 |
---|---|
혼자있을 때 화내는 나에게..('화내는 당신에게'를 읽고) (0) | 2024.07.16 |
다시 봐도 킹받는 자유의지 ('샘 해리스의 자유 의지는 없다'를 읽고) (0) | 2024.07.12 |
한 밤의 채터링 (채터를 읽고 난 후) (0) | 2024.05.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