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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일기장에

다시 봐도 킹받는 자유의지 ('샘 해리스의 자유 의지는 없다'를 읽고)

by 북치고영 2024. 7. 12.

 

 

 

 

 

12년 전 교보문고 근처의 회사를 다니면서

매일매일 신간도서를 보러 갔다.

 

오랜만에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볼까 하고

가벼운 맘에 들었다.

 

 

 

 

 

 

 

 

 

그래고 뜻밖의 12년 전 감상노트가 적힌

포스트잇을 발견한다.

 

화가 많이 났는지

작가를 운명론자라고 신랄하게 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니 그때의 기분도 살아난다.

 

자유의지=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

 

이보다 더 나일 수가 없는데

그게 내가 아닌 데다, 자유도 없는 상태라니까

화가 많이 났었나 보다.

 

 


지금은 자유의지,무의식적인 취향에 '자유'도 ''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샘해리스(저자)의 영향 때문은 아니고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 강의를 통해

willing과 unwilling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다

 

김주환 교수의 친절한 강의를 추천한다.

 

친절함이 학업성취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유튜브로 해주는 비대면 강의이지만

놀라움의 길이 열리니 한 번쯤 보셔라.


샘해리스의 글은 너무 군더더기가 없어서

나에게는 좀 어렵고

뇌의 수준 운운할 때는 찔려서 불쾌하다.

 

어쨌든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 중

와닿은 것을 적어보자면.

'할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을 할 '자유'가 있는가?

굳이 이해해 보자면 알고 있어야 비로소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왜 선택했는지

핑계를 대거나, 변명을 하는 경험을 하지 않는가.

실제로 왜 선택했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매 순간 치열하게 그리 될 뿐이지

매 번 내가 숙고한 후 선택하지만은 않는다.

 

나를 작동하게끔 한 원리

배경에 의한 것 즉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할까?

 

내게 뇌종양이나, 치매와 같은 (우리나라는 알코올까지)

비정상적인 행동을 가능케 하는 병명이 발견되지 않는 한

나의 악의적인 경향에 대해

사회적인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매 순간 의식적 주체로서 살아가기는 불가능하지만

최대한 매 순간 상대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다.)

 

지금까지 들어 본, 가장 어이없는 변명!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한심해 보일 변명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일 것 같아서 


나는 항상 보복하고 싶은 마음의 뿌리를 찾고 싶었다.

 

책에서는 보복하고 싶은 충동을

'인간 행위의 바탕깔린 원인들보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는 것'

이라고 한다.

 

보복심에 휩싸였을 때 남의 사정을 봐주기란 여간 쉽지 않다.

어쩌면 내가 극복해야 할 마지막 산이라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기어코 풀고 싶은 기분에 휩싸이고 만다.

 

나쁜 유전자, 나쁜 부모, 나쁜 환경, 나쁜 생각 등이 일정하게 결합된 사람들이다.(p68)

그래! 전적으로 그 작자들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이해하는 것용서하는 것별개의 문제다.

 

샘해리스공부 많이 한 거랑

'자유의지'를 잘 가르쳐주는 거랑은 별개이듯이...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의지

willing보다 UNwilling을 실천할 때 더 발전적인 나를 완성할 수 있다.

 

추상을 단어로 정리한 것은 굉장한 일이지만

샘 해리스의 문체는 친절하지 않고, 

개념을 처음 듣는 분들은 불쾌하실 수도 있다. 

 

(룰루 밀러의 아버지가 이랬을까?)

 

다시 봐도 어렵고 씁쓸한 자유의지는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 강의를 통하면 기분 좋게 배울 수 있다.

유튜브에서 관련강의 들어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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